초등학교 시절
저는 초등 학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어느 때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형을 따라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먼 동네에 사는 학생의 책을 빌리려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싶었고 학교에 다니게 될 날을 고대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제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의 하나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생들이 모인 운동장에 갔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인호라는
여자 선생님이 생각이 납니다.
인자하게 생긴 1학년 때 교사였던 것 같습니다.
김영희 선생님, 황택규 선생님, 주순성 선생님 등이 기억 나는 초등학교 교사들입니다.
김영희 선생님은 4학년 때 담임이었다.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 분인데 기혼의 남자 선생과 연애를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많이 귀여워 해 주셔서 시기 아닌 시기도 했습니다.
1학년 같이 학교에 가곤 했던 박만규라는 친구가 그립습니다.
자라꼬지에 살았는데 1학년 때 이사를 가서 그후로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잘 생긴 좋은 친구였는데 찾을 수만 있다면 만나고 싶습니다.
나이 많은 부모님과 가난하게 살았던 이의선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발사 혹은 택시 운전등을 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로는 중앙 대학의 교수로 있는 최정호 가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때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중신리에 살던 단발 머리 임혜자, 강경 가는 길에 살던 박월정, 산 너머에 살던 박혜숙 등이 떠오릅니다.
다리를 걷어차서 고통을 준 여학생이 있었는데 건강이 회복이 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5학년과 6학년 때는 강경으로 이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강경 채산동에 사시던 매형 집에 가서 전학할 거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세영이의 어머니인 친척 누님은 용안 저의 집에 오시면 용돈을 제 손에 쥐어 주고 가셨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이 지낸 것 같습니다. 미군이 주는
우유가루를 학교에서 타서 집으로 가지고 가면서 고맙게 생각했었습니다. 구제를 통하여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말없는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