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가 죽었다. 언제나 확신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과연 그리했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
물론 사적인 관계는 전혀 없다. 그와 만난 것은 단 두 번.
그 중에 한 번은 악수만 하고 먼발치서 본 것이니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기회는 한 번 있었던 셈이다.
내가 기독교방송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을 때 였고,
그는 대선후보 인터뷰 자리에 나와 주었다. 잘 나가던 이회창 후보는
자식의 병역문제를 제기하고 있던 기독교방송이 편파적이라며
나오길 거부했고, 정몽준 후보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시기였다.
자기가 출연하면 청취율이 훌쩍 뛸거라며 호기있게 스튜디오에
들어서던 대선후보 노무현의 일행은 조촐하기 그지 없었다.
이기명 후원회장과 수행비서만 내 눈에 띄었다.
이럴수도 있나?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움직이는 데...
당시 그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었고 민주당에서는 후보교체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나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지 그는 호기로왔다.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초라한 상태였음에도
그는 당당했다.
방송이 시작되고 나의 첫 질문은 통상적인 것이었다.
대선후보로서 청취자들에게 하실 말씀을 위한 시간을 드릴테니
하시라는 것이었다.
그의 대답은,
어, 준비 안해왔는데요? 그냥 바로 합시다.
였다. 이게 녹음이 아니라 생방송인데....
진행자인 나를 처음부터 당황스럽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마도 언제나 그렇듯 모두발언으로 시작하는 것이 이런 경우
통상적이라 PD도 특별히 주문하지 않았던 모양인데, 대개
이런 경우 말하지 않더라도 준비해 오는 것이 보통이거니와
설사 준비해 오지 않았다 하더라고 준비해 온 것처럼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으로 시작하는 모두발언을 하게 될 것이라는 통상적 기대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준비하란 말도 못들었고 그래서 준비해 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니만큼
어 준비 안해왔는데요? 그냥 바로 합시다.
이렇게 내질르고 마는 것이었다.
어쩌랴 생방송이고 당사자가 준비해 온 '원고'가 없다는 데....
나만 호흡을 가다듬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죠. 그럼..첫 질문 바로 시작하기로 하죠. 이렇게...
(그의 발언이나 내 말이 정확한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것이 정치인 노무현을 내가 처음 본 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해보고 나서 그를 본 나의 느낌...
5공청문회에서의 국회의원 노무현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나는 그를 '다른' 정치인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1년이 넘도록 방송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숱한 전형적인 정치인이 아닌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진짜 정치인이었다.
정치인 노무현의 생각과 가치지향이 나와 꼭 같지는 않다.
시민단체인사가 노무현 정부에 많이 참여한 것도 사실이지만
노무현 정부 5년동안 그 견해의 차이로 노무현 정부와 시민단체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말하는 것과 달리 숱하게 다투었다는 것도
누구나 다 잘아는 일이다. 정치적 술수가 아닌 한 정치인의 신념이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유지하려고 하면
견해가 다른 집단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도
물론 그는 잘 알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정치인으로서 유권자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진정으로 옳다고 믿고 실천하려는 진짜 정치인이었다.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게 되는 것은 생전의 그를 정치적으로
지지했던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전형적인 정치인들과는 '다른' 정치역정을
지내왔고, 거기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음을 아는 까닭이다.
그의 죽음앞에 내가 머리를 숙일수 밖에 없는 것은
패배를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이 정치적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통해 실제로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지닌
가치를 위한 행동을 해 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정치인이라면 그 패배를
알 경우에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돌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것이 정치라고 여기는 세상에서 그의 죽음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내일 봉하로 간다.
어줍잖게 다리를 다쳐 반기브스를 하고 있지만 봉하로 가보려 한다.
내가 본 진짜 정치인 노무현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출처:
http://epiwork.cafe24.com/chang/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