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 에베소서 5:14-19-2/7/2010
1. 졸다가 노칠뻔한 비행기
지난 주일 저녁 저는 휴스톤 공항에서 레이건 공항으로 오는 비행기 탐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졸려서 눈을 부치다가 시계를 보았습니다. 탑승 시간이 지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탑승 게이트를 보니 사람들이 전혀 탑승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급히 일어나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탑승하는 문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헐레벌떡 새로운 문을 향하여 뛰어가보니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계속 졸고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주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2.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오늘 본문은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너서라.”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잠에서 깨라고 말합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에 바울이 저들을 잠자는 사람에 비유했을까요? 4장 17절 이하에서 보면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비교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방인들처럼 허망한 생각을 가지고 살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던 과거처럼 목적없이 헛된 것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권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삶의 태도가 예수를 메시야로 믿기 전이나 후나 전혀 다름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4:22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새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5장 2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자기 몸을 내어주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신 것처럼 살라는 당부입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면 잠자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사람입니다. 잠자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살아 있지만 잠에서 깨어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다름없습니다. 만일 잠을 자면서도 무엇인가를 한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졸면서 운전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런 사람은 자기만 위험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3. 깨어 있는 사람들
저는 지난 두 주전 휴스톤 서울 교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웠습니다. 그 분들의 섬김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만큼 극진했습니다. 그 세미나에 참가자들은 잠시 머물다가 가니까 그럴 수 있을테지만 놀라운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었습니다. VIP 라고 부르면서 최상의 대접을 합니다. 저 분들만큼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가 제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4. 죽은 사람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너서라” 고 말합니다. 죽은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입니다. 몸은 있으나 정신이 떠난 사람은 시체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일어날 일로만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활을 이해하면 지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예수의 부활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죽은 자이고 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게 될 때 영적으로 부활한다고 이해하면 부활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5.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부활이 우리의 능력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에게 비췰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죽은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그런 능력이 나타납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6. 기적을 기대하라
저는 요즈음 제 자신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기대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려고 기다리고 계시는데 저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속적인 기독교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고상하고 이지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소홀히 생각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실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간증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은 더욱이 없습니다.
앞으로 저는 기적을 기대하며 살려고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기적인 기도만 하면서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이 도우시면 가능한 것을 기대하면서 살겠습니다. 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큰 꿈을 갖고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고 주님이 살아 계심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은 무엇입니까? 죽은 자가 살아 나는 기적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믿게 되는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이 왜 일어나야 할까요? 왜 이런 기적을 기대해야 할까요?
이것이 바로 주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잃어 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관심이 저의 관심이 아님을 알 때 저는 한 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이 잃어버린 영혼이 아니라면 죽은 영혼이 아니라면 오늘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때 부끄러울 것입니다. 결혼은 했는데 자녀가 없는 부부를 상상해 보십시오. 부모님은 눈이 빠지게 손자 손녀를 기다리는데 사로 사랑을 하지 않으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8. Give, Suffer, Die
저는 휴스톤 서울 교회 영어 회중의 표어를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들의 표어가 Give, Suffer, and Die 였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더 많이 받고, 더욱 행복하고,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든 것을 주고, 고난 받고, 죽기까지 헌신하는 것이 꿈입니다. 순교가 따로 없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고난을 받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장년이 아닌 청년들입니다. 앞으로 미래가 창창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는 젊은 세대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런 각오를 가지고 산다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이 젊은이들이야 말로 예수를 믿은 후에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다면 어떤 것도 아끼지 않겠답니다. 바로 이들이 깨어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제 우리도 우리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고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우리끼리 친하는 것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모든 관심을 기울려야겠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관심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에 집중해야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16-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영어성경은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모든 기회를 가장 잘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부자가 되기 위한 기회입니까? 아닙니다.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기회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주, 막거리, 그리고 맥주 혹은 알코홀 성분이 들은 음식물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술을 먹고 먹지 않고가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 것을 보아도 이 술의 의미는 단순히 알코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것,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모든 것,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26:19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이 말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일어날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주께서 도우시면, 성령이 역사하시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도저히 믿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주님을 구세주로 받아드립니다. 단순히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진리를 선포하기 위하여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10. 결론
저는 금년 한해 이런 꿈을 꾸어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세례 받는 사람의 수를 우리 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해가 되는 꿈입니다. 주께서 몇 명을 허락하실 지 모르지만 이런 기대를 가지면 주께서 이루어주지 않을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주님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서 영적인 부활을 경험하시기를 원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