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죽음도 두렵지 않게 합니다 – 누가복음 22:42-46 - 3/28/2010
1. 절벽에서 떨어진 사람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다행이 절벽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움켜쥐어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 사람이 절벽 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사람 살려! 위에 누구 없습니까?“ 그러자 이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아! 염려 하지 말아라. 내가 여기 있다!” 이 사람이“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하나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하나님, 저를 여기서 구해 주시면 주님을 위해 제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그 나무를 잡은 손을 놓아라.”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걸 놓으면 저는 떨어져 죽습니다.”“그렇지 않다. 내 말을 믿고 그 나무를 놓아라!” 그러자 그 사람이 한참 생각하더니 뭐라고 말했습니다. 뭐라고 소리쳤을까요? “위에 누구 다른 분 안 계세요?”
2. 예수님의 기도
오늘 본문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써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임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함을 깨닫게 됩니다. 평소 기도하던 장소인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갔습니다. 마가복음 14:34에 의하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마음이 근심에 쌓여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런 기도를 세 차례나 드립니다. 성경의 기록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얼마나 고뇌 가운데 몇 시간을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결론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서 죽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메시야가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왔는데 죽다니 무슨 말입니까? 아니 하나님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예수님이 원하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이게 무슨 응답입니까?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램은 모든 것이 쉽게 빨리 이루는 것입니다. 사업도 그리고 자녀들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빨리 빨리 다 잘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질문은 “빨리 빨리 내가 원하는 데로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3. 이집트를 떠난 유대인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납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소원이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나 걸려서 약속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떠날 때 20세가 넘은 사람들 중에서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에 불과하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까? GPS 가 없어서 길을 잃어버린 결과입니까? 모세와 아론이 어떻게 가는지를 몰라서 헤멘 것입니까? 수많은 원주민들과 싸움 때문에 이렇게 지체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사기라도 친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빠른 길로 약속에 땅에 들어가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 살 때 광야에서 40년을 헤멜 줄 미리 알았더라면 출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급에 있으면 고기도 먹고 밥과 물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믿고 따라 오다가 광야에서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그것도 미련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3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광야를 지나온 사십년 동안,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어떻게 오랫동안 너희를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너희의 마음 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주께서 너희를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너희도 알지 못하고 너희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다.”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광야에서 고생하게 했는데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불평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온갖 고생을 다 시키더니 이제는 십자가에 달려서 죽게 하느냐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을 굽히고 죽음을 받아드릴 수 있었습니까? 자기를 죽게 하신 분이 아버지이고 그 분의 사랑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얼마나 그 분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합니까? 얼마나 많이 내 생각이 주님의 뜻보다 낫다고 생각합니까? 주님은 내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승리의 길이고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신앙 생활도 최저의 노력으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합니다. 신앙생활도 꾀를 부릴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4. 베드로와 가롯 유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소풍을 갔습니다. 가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소풍 갈 때 돌 하나씩을 가지고 오너라.” 베드로 사도는 커다란 돌덩이를 들고 와 낑낑거리며 갔습니다. 가롯 유다는 베드로를 보면서 속으로 “아이고 바보야!”말하면서 아주 작은 조약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나섰습니다. 한참 걸어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돌을 내려놓고 모두 풀밭에 앉은 다음 예수님이 식사 기도를 하시자 각자 들고 온 돌이 빵으로 변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베드로는 배불리 먹고 가롯 유다는 배가 고팠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빵을 나누어 줄 때 가롯 유다는 얼굴이 뜨거웠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보가 아니라 자기가 바보임이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5. 스프링휠드 교회로 이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 교회가 스프링휠드 지역으로 옮겨서 예배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예배 장소가 옮기게 될 경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가까워지느냐 혹은 멀어지느냐입니다. 가까워지면 좋다고 생각하고 멀어지면 반갑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한번이라도 우리는 진지하게 나의 관점이 아닌 주님의 관점에서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이곳이 당신이 원하는 곳입니까?”“이곳이 제가 섬겨할 곳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보다 우리 가족의 정착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6. 종려주일/고난 주일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두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입성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제자들도 이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망가야 합니다. 죽음을 피해야합니다. 억울하게 죽는다고 누가 알아줍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지 않습니다.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모두에게 유익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여러분의 고난이 지금은 답답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요?
7.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시편 143편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든지 그 분의 뜻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믿기에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뜻이라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생각이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각자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은 항상 그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상대방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망한다구요. 지금까지 살아나온 것도 다 나의 명석한 두뇌와 그 판단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더 좋은 결과를 우리는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기에 죽음도 받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스승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도 제자들은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 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외쳤습니다.
8. 최인호의 인연
최인호씨는 “인연”이라는 책에서 자기 형의 꽃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찻길로 뛰어들었다가 피하지 못하고 열차에 치어 죽은 누나 이야기를 합니다.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의식 세계에서도 무엇이든지 하려는 누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메시야로 오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그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이라고 믿어서 그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제자들도 그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습니다.
바로 그 사랑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주님은 당신의 사랑을 믿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때로는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되는 길도 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