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기회 – 요한복음 21:15-17- 4/18/2010
1. KBS 방송 문화 연구소 조사 자료
최근에 KBS 방송국에서 20세 이상 성인 남녀 8천 5백명을 대상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응답자중에서 기혼자 4천 8백명을 대상으로 다시 결혼하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예라고 대답한 사람과 아니오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어떻게 나왔을까요? 아니라고 대답한 사람이 59.2 %입니다. 그 중의 여성은 71.9% 그리고 남성은 46.9% 였습니다. 남편과 아내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결혼할 예정인 손녀가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할아버지와 또 결혼 하실거예요?” 그러자 할머니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결혼하고 말고.” 손녀는 할머니의 대답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이렇게 말합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신 모양이네요.”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그게 아니고, 다 그 놈이 그 놈이여.”
결혼 6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신 이창복, 안영수 권사님 내외분께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 금년 결혼 30주년을 맞는 저는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사는 비결은 상대방에게 두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실망시키면 다음에는 잘하겠지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2. 베드로의 두번째 기회
성경에도 예수님으로부터 두 번째 기회를 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입니다. 그는 어부였고 제일 먼저 예수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사람중의 하나였고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혀 죽게 되자 모른다고 부인하기는 했지만 참회하고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그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디베랴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왜 갔을까요? 물고기가 필요해서요? 심심해서요? 그는 어쩌면 예수의 제자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옛날 직업인 어부로 살기로 결심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는데도 왜 예수 따르는 일을 포기했을까요? 예수께 면목이 없다고 생각한지 모릅니다. 그는 수석 제자였는데 다른 제자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도망만 쳤으면 괜찮았을텐데 스승을 저주하면서 부인한 것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고기나 잡으면서 조용히 여생을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지 않은지 몇 년 지났지만 물고기가 언제 어디서 잘 잡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6명의 제자들도 동행했으니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에게 창피스러웠습니다. 어부출신이라고 말하기가 쑥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어찌합니까?
베드로의 생애에 가장 힘든 시간이 이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를 따르는데 실패했고 이제 전직 직업을 찾아 왔는데 그것도 안됩니다. 그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What Shall I Do? 나는 어떡하라고?
최대의 좌절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혼동이 왔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느냐고 한탄을 했을 것입니다. 지난 3년간 시간낭비한 것도 억울한데 물고기도 잡히지 않아 미래가 어둡게 여겨져 암담했을 것입니다.
3. 뉴욕에 사는 탈북자
지난 4월 초에 뉴욕에서는 탈북자로 난민 지위를 부여받아 입국한 신 요셉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일본 식당에서 일하면서 자유와 경제적인 부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뭔지 모른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4년전 동생과 함께 북한인권법에 의하여 처음으로 들어온 탈북자인데 두번째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미국에 오면서 큰 꿈을 가지고 왔는데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좌절하십니까? 미국에서 두번째 인생을 멋지게 꾸미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잘 되지 않습니까? 사방을 바라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 절망하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4. 베드로를 찾아오신 예수님
베드로가 이제는 어부 노릇도 못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해변에서 누가 소리칩니다. “여보슈, 물고기 좀 잡았소” 제자들이 소리칩니다. “아닙니다.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래요? 그럼 배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져 보세요. 아마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놈이 나보다 더 물고기에 대하여 잘 안다고 훈수야.” “배 오른쪽으로 던져 보라고. 우리가 안 해본 방법이 있는 줄 알아. 벌써 다 해 보았다고.” 그래도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다시 그물을 던집니다. 그랬더니 왠일입니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큰 고기가 무려 153 마리나 잡혔습니다. 얼마나 무거운 지 8명 모두가 달려 들어 겨우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요한이 소리쳤습니다. “주님이시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얼른 옷을 걸쳐 입었습니다. 그리고는 물 속으로 뛰어 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해변으로 헤엄을 치면서 갑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을 위하여 해변에 아침 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해변가에서 물고기 잡는 비법을 가르쳐 준 분께 “누구시냐” 고 묻는 사람은 없습니다. 얼굴을 보기도 전에 그 분이 예수님 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두들 부끄러워서 밥을 먹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5. 누구를 만나는가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뀝니다. 아내와 남편과의 만남도 그렇고 미국에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교인들간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목회자와의 만남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만남이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은 어떻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다른 인생을 살았을까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를 주님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다른 인생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 오신 것은 단순히 물고기 몇 마리를 잡게 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그 분과 늘 함께 살아 가기로 결심하는 순간입니다.
6.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가 끝나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괴로웠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당근”인데 그렇다고 말을 하려니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생각이 납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은 같은 질문을 세번 하십니다. 차이가 있다면 처음에는 아가페적 즉 희생적인 사랑을 하느냐고 묻다가 나중에는 친구사이의 사랑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원하는 사랑은 하지 못하지만 친구로 사랑한다고 대답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3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는 상처받았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무슨 근거로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기가 사랑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더 잘 안다고 대답했을까요? 마태복음 26장 33-35절에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마음을 몰라서 물었을까요? 그보다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님이 3번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은 베드로가 3번 부인한 것을 용서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해석도 일리는 있습니만 저는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런 일을 할 줄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해변가로 찾아오신 것은 용서의 확인을 넘어서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상배당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말은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도 나를 사랑하느냐는 말 아닙니까? 예수께서 배드로에게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은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예수께서 이미 알고 계심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입니다.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이 끝나자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 내 양떼를 쳐라. 내 양떼를 먹여라.” 라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내 대신 목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 살아 있는 예수가 되라는 요청입니다. 영적인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영적이 아이들을 돌보라는 부탁입니다. 유언의 말씀입니다.
7. Pay It Forward 영화
약 10년 전에 Pay it Forward 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한국어로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고 번역된 영화입니다. 열한살 먹은 트레버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일년 동안에 할 숙제를 내줍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오라는 것입니다. 트레버는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 사람에게 보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호의 베풀기를 제안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세 사람을 도와주면 그 세 사람은 각각 또 다른 세 사람을 도와주어 총 9명이 호의를 받게 됩니다. 아홉 사람이 각각 세 사람을 도우면 총 27명이 호의를 받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기하 급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게 되어 세상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예수님께 돌려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합니다. 만일 나누고 있지 못한다면 받은 것이 없던지, 받고도 무엇을 받았는지 모르고 있던지, 줄줄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8. 쿼바디스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보답했을까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는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는 성령이 충만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3천명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쿼바디스라는 영화를 보면 네로왕 시대에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서 로마를 떠납니다. 그 때 그는 도망가는 도중에 로마를 향하여 들어오는 분을 만납니다. 자세히 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이 들어오십니다. 왠일로 로마에 들어오시느냐고 베드로가 물으니 네가 도망가기에 너 대신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기 위하여 들어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다시 로마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순교합니다.
오늘 본문은 제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동기가 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부탁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예수님은 저를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두번 째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 너 잘 할 수 있어. 힘 내. 너 나 사랑하는 줄 나 알고 있어.”
9. 결론
여러분은 목자입니까? 여러분이 목자라면 여러분의 양은 누구입니까? 우리교회 젊은이들 중에는 부모 없이 나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돌볼 영적인 부모님은 안 계십니까? 두번째 기회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낙심에서 용기를 낼 기회입니다. 죄책감에서 해방될 기회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확신할 기회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기회입니다. 주님의 백성들을 먹일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주님이 주신 두번째 기회로 인하여 여러분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 복된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