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 오카리나 연주자 손문영씨가 대전 동구 판암2동 동사무소 벤치에서 동장 김옥희(오른쪽 두 번째)씨와 직원들에게 오카리나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대전=이중호기자 jhl1991@hk.co.kr
대전 2급 시각장애 손문영씨의 '다시 찾은 삶'
시력 잃고 술에 빠져 자살 기도까지 했다… 친구 권유로 배워 10개월 만에 유명인사
"실버악단 만들어 사람들 위로해 주고 싶어"
18일 오후 대전 동구 판암2동 동사무소. 생일을 맞은 오정숙(54) 새마을부녀회 회장을 위해 부녀회원과 동장 김옥희씨, 직원 등 12명이 케이크와 과일을 놓고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고 있었다.
출처: http://media.daum.net/society/welfare/view.html?cateid=1066&newsid=20090620024705743&p=hankooki
동사무소 직원들이 마련한 선물을 전달하자 검은 테 안경에 빵모자를 쓴 신사가 상아색의 오카리나를 꺼내 가요 '칠갑산'을 구성지게 연주했다. 이탈리아어로 '작은 거위'를 뜻하는 오카리나는 토기로 만든 새 모양의 악기. 지그시 눈을 감고 연주에 빠져들던 참석자들은 곡이 끝나자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이날 오카리나를 연주한 사람은 2급 시각장애인 손문영(60)씨. 오카리나를 배운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와 강습 동료 10여명은 요즘 동네 행사의 단골 초청자다.
이제는 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만큼 '유명 인사'가 된 그는 한때 알코올 중독자였고 삶에 의욕을 잃고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오카리나가 없었으면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요."
대전 토박이인 손씨는 가정 형편 탓에 어려서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기술을 배우려 들어간 철공소에서 쇠를 깎다가 쇳덩이가 튀어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그 후 공사장 잡부를 시작으로 목수 조수를 거쳐 콘크리트 타설 거푸집을 만드는 목수로 전국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결혼은 눈 때문에 포기했다. "몇 번 선을 봤지만 항상 '눈이 문제'라는 뒷말이 들려와 선 보기도 싫어졌고 30대 중반을 넘기며 혼자 살기로 했죠."
오랜 객지생활과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려 마시던 술은 그의 몸을 갉아 먹었다. 당뇨가 심해지면서 오른쪽 눈마저 시력이 떨어졌고 녹내장까지 겹쳐 2000년부터는 노동일도 할 수 없었다. "일은 못하고 눈도 안보이고 인생 끝났다"는 생각에 그는 술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침부터 술에 취해 이웃에 화풀이를 해대는 나날이 이어졌다.
2002년 8월 현재 살고 있는 판암동 임대아파트로 이사하며 "새 동네에서 술 끊고 새롭게 살아보자"고 다짐했지만, 허사였다. 재작년 술김에 집에 있던 농약을 마셨다. "아직 세상 하직하긴 일렀던지 퍼뜩 정신이 들어 119에 전화를 했소. 그리고 나서 바로 토하더라구."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그러고도 술병은 고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가 아파트에 붙어있던 안내문을 보고 동사무소 오카리나 강습에 가보라고 권했다. 강습은 대전시가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생활 개선을 지원하는 무지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한 것.
어려서 기타를 치고 음악을 좋아했던 생각이 나서 신청을 했다. "술 먹고 동사무소에 가서 행패 부렸던 생각도 나서 주저하다가 참석했다"는 그는"처음에는 숨도 차고 연주가 쉽지 않았지만 점점 묘한 재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강습 전날엔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고, 자연스레 "이참에 술 끊고 진짜 새 삶을 살자"는 결심에 이르렀다. '떴다떴다 비행기'같은 동요로 시작해 대중가요를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늘자 사는 재미도 새록새록 느껴졌다. "술 생각이 떠오르면 무조건 오카리나를 잡았고 동네 술 친구들 피해 김밥 사서 산에 올라가 종일 입이 부르트도록 불었어요."
손씨는 시력장애 탓에 음표나 글씨가 주먹만한 악보를 만들어야 해 신곡을 배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종일 오카리나를 쥐고 사는 열정 덕에 이제는 즉흥 연주도 하고 '슬픈 연가'란 곡도 만들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실력이 늘자 꿈도 생겼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동네 노인들과 실버악단을 만드는 것이다. "남에게 폐만 끼치고 살다 작은 힘이지만 남을 도울 수 있어 삶에 의욕이 생깁니다. 노인복지시설 등을 찾아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요."
대전=허택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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