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8시 서울 구로동에 사는 신민정(32)씨가 외출 준비에 나섰다. 병을 흔들어 가며 스킨과 로션을 구분해 발랐다. 파우더가 뭉치지 않게 손으로 꼼꼼히 매만졌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긴 파마머리, 여느 젊은 여성과 다름없는 발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시각·청각 1급 장애를 동시에 가진 장애인이다. 20㎝ 앞의 형체만 대략 알아보는 정도다. 보청기를 껴도 귓가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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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꼬복지관의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러브미’ 강의실에서 시각·청각 장애인 신민정씨(右)가 수업을 듣고 있다. 귓가에서 나는 큰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신씨를 위해 활동 보조 도우미가 강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신씨는 이 프로그램 덕에 7년 만에 외출을 시작했다. [김경빈 기자]


이 날 신씨가 곱게 단장한 건 일주일에 한 번 바깥 바람을 쐬는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가리봉동 성프란치스꼬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시작한 ‘러브 미(LOVE ME)’ 프로그램 강의를 들은 뒤 신씨는 7년 만에 외출을 시작했다. 신씨의 외출은 국가가 중증 장애인에게 지원하는 ‘활동 보조 도우미’가 찾아와 돕는다. 오후에 시작하는 강의를 신씨는 아침부터 준비한다. “일주일 내내 이날이 기다려져요.” 그는 “지난달 화장과 옷차림 수업을 듣고 난 뒤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며 수줍게 웃었다.

신 씨를 다시 세상 속으로 불러낸 ‘러브 미’는 미혼 여성 장애인의 ‘자존감 향상’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문 메이크업 강사와 코디네이터가 한 명 한 명 외모를 분석해, 단점을 보완하고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법을 일러준다. 좋은 인상을 남기는 감정 표현법과 대화법도 배운다. 장애가 있지만 취업과 결혼에 성공한 여성들을 초빙해 일대일 조언도 받는다. 복지관 측은 6개월 과정이 끝날 무렵엔 취업 면접과 소개팅도 주선한다는 계획이다. 신씨와 함께 10명의 여성 장애인이 참여한다.

이날 수업 주제는 ‘자기 표현’이었다. 차례가 되자 신씨는 큰 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시각과 청각, 중복 장애인이에요. 예전에는 ‘왜 하필 나일까’ 하고 부정적인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눈과 귀 빼고는 건강한 제 몸이 자랑스러워요.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에게 장애가 찾아온 것은 25세 때였다. 고등학교를 나온 뒤 간호 조무사로 일하던 그였다. 어릴 때부터 청력이 안 좋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느새 밤눈이 어두워지고 바로 옆에 사람이 지나가도 느끼지 못할 만큼 시야가 좁아졌어요. 병원에서 환자랑 부딪히기 일쑤였죠.” 뒤늦게 찾은 병원에서 신씨는 진행성 난청과 망막색소변성증(망막세포 퇴행으로 실명에 이르는 질환) 진단을 받았다. “온 세상이 암흑 천지 같았어요.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닥쳤을까, 원망하는 마음뿐이었죠.”

그때부터 신씨는 일을 그만둔 채 집에만 틀어박혔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상이 너무 무서웠어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세상’을 끊었죠.”

사회복지사가 ‘러브 미’ 프로그램을 추천했을 때도 처음엔 망설였다. “여자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작은 희망으로 참가했죠.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신 씨는 요즘 음성컴퓨터 작동법과 점자를 배운다. 내년부터 사이버 강의로 사회복지학 전문학사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지난달 ‘러브 미’ 수강생들과 중증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도 다녀왔어요. 장애가 생긴 뒤론 도움만 받았지, 누굴 도운 적이 없어요. 저도 장애인이지만 더 힘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깨달았어요. 사회복지사 꿈도 그래서 생겼고요.” 신씨는 이제 자신뿐 아니라, 남을 사랑하는 법까지 배우고 있었다.

이에스더 기자 , 사진=김경빈 기자

출처: http://healthcare.joins.com/news/wellbing_article.asp?Total_ID=3657028&serv=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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