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하종기자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사랑·희망 전령사’릴레이 인터뷰- 전신 중화상 극복해낸 이지선 씨"


티 없이 맑다. 밝다. 꽃보다 더 아름다웠을 20대 초반에 자동차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당한 여인의 표정과 말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이지선씨. 논리적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그의 의지, 그의 꿈, 그의 희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습니다. 공부도 웬만큼 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요. 미인은 아니었지만 밉상도 아니었죠.”(웃음) 과거 얘기를 떠올리던 이씨는 “하지만 사고를 당한 뒤 그전까지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세상으로, 도대체 이런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세계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9년 전의 일이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오빠와 함께 귀가하던 중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덮쳐 오는 바람에 차가 불길에 휩싸였다. 이씨는 “7개월 간의 입원과 10여차례의 수술을 거치는 동안 나의 의식은 몇번이나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는지 모른다”고 돌이켰다.

절망에 빠져 있던 이씨를 구원한 것은 신앙과 가족의 힘, 그리고 자신의 의지였다. “신앙 없이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게 신앙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몸이 망가졌지만 내 인생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문득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때엔 또한 피할 길을 내어 주신다’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이씨를 구원한 또 하나의 요인은 가족의 힘이다. 이씨는 특히 “우리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가 절망에서 일어서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힘을 주었다. “사고가 나고 1년쯤 흐른 뒤 가장 아팠습니다. 딸 생각에 내 옆에서 떠나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물었죠. 어머니 인생과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느냐고. 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바꾸겠다고 하셨어요.”

이씨는 성품도 참 선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가족의 사랑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제 가족과는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도 있지 않겠어요.” 이 대목에서 이씨는 신앙의 힘, 가족의 힘이 참 중요하지만 결국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작업은 자기 의지와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 뒤로 이씨는 옛날의 성격을 되찾았다. 언젠가 한 언론사 기자가 너무나 담담하게 인터뷰에 응하는 그에게 “왜 그렇게 밝습니까. 혹시 연기하는 거 아닙니까”라며 ‘추궁’했다고 한다. “너무 힘들었어요. 대화가 되지 않는 느낌, 소통이 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분들만 계시다면 그런 사회에는 안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씨는 이런 식의 대접을 많이 받았다. 너무 의연하다는 이유로, 너무 밝다는 이유로. 이 또한 사회의 편견이 아닐 수 없다. 이씨는 사회에서 번번이 소통(疏通) 아닌 소외(疎外)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이씨는 그런 사회 분위기에도 적응을 해나갔다. 이씨는 “사회로부터 이해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해해준다”고 말했다. 사회가 이씨를 이해한 것 이상으로 이씨가 사회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이리라.

이씨는 2004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명문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 석사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하버드,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세계 유수의 대학이 몰려 있는 보스턴의 풍토를 닮아서였을까, 이씨의 말투와 표정엔 지적인 맛이 깊이 배어 있었다.

“인생의 계획이오… 사회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을 위해 좀 더 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돼야죠. 꼭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바람은 없어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이씨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보건복지가족부에 인턴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전공과 도 관련이 있고, 무엇보다 장애인 정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씨는 특히 장애인의 탈(脫)시설화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특정 시설에 수용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로 나아가는 개념으로 장애인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 최근 번지고 있는 ‘그룹 홈’이 그런 식이죠. 4, 5명의 장애인이 1명의 선생님과 함께 일하는 겁니다.”

탈시설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소외된 개인에서 사회 일원으로의 편입. 시설의 개방이나 사회 시스템의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개방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더니 맞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씨는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탈시설화를 진행해왔는지를 더 연구하고 이를 복지부 정책 입안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는 중이란다. 이를 위해 당초 7월 말까지로 했던 복지부와의 인턴 계약을 좀 연장할 계획이다. “과제를 완성해야 하고, 생각보다 배우는 게 많습니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습니다다.”

인생의 봄날을 어렵게 겪은 이씨는 이제 성하(盛夏)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의욕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 때다. “올가을 뉴욕 마라톤대회에 나갑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있는데 거기서 기금 마련을 위해 함께 뛰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푸르메재단이 재활병원 건립 기금을 마련한다는 거예요. 제가 뛰는 만큼 기금 마련을 해주신다고 하네요.”

이씨는 마라톤을 한번도 뛰어본 적이 없고, 몇시간 안에 들어올지도 모르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해보고 싶다고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들어오는 마라토너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절망 극복을 위한 투쟁을 벌인 자신의 모습을 오버랩시켰음직하다.

이씨는 올해 32세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연애도 해보고 싶다는 그에게 배우자감을 묻자 “생각이랑 마음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옆의 사람을 챙겨줄 줄 아는 사람,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 자기 상처 때문에 상대의 말을 오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좋겠단다.

인터뷰를 하던 이날도 이씨는 오후 늦게 대전 계룡대의 육군본부에서 강연을 했다. 2003년에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강연 요청이 쇄도해 지금까지 300번 이상 강의를 했다고 한다. 6년여 만에 300번이면 1주일에 1번꼴이다. 1번 강의에 수백명에서 수천명이 모인다고 하니 수십만명이 이씨의 희망강연을 들은 셈이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서로 보듬어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어려웠을 때 가족과 친구들이 제 ‘속도’에 맞춰 멈춰주었습니다. 환자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와보니 그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하게 됐습니다. 문화일보가 ‘사랑 그리고 희망’ 연중기획을 통해 바로 이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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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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