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굳게 닫힌 문 틈 사이로 아름다운 반주 선율이 흘러나왔다. 반주에 맞춰 누군가가 노래를 불렀는데, 가히 꾀꼬리라 불러도 될 만큼 신명난다. 연주에 방해되지 않게 살그머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무대 위에선 연주와 노래 연습이 한창이다.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 의정부 문화원(이하 문화원). 문화원은 나지막한 언덕 위 조용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연습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을 때 '어르신 밴드'를 지도하고 있던 한정호(36) 강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밴드의 연습 시작 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방문했는데 벌써부터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습을 잠깐 멈춘 후 한정호 강사가 기자를 소개해 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끝내자 곧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무대 중앙 앞 쪽에선 네 분의 할아버지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고 멋진 모자를 눌러 쓴 할머니 보컬이 그들 중간에 서서 연주에 맞춰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뒤쪽에는 두 분의 할머니가 드럼을 쳤고, 무대 오른쪽엔 피아노와 키보드가 있었는데, 이 역시 할머니 두 분이 연주하고 있었다.





무대위에서 연습하는 의정부 어르신 밴드


ⓒ 이승철



악보 없이 가요 100곡 부르는 할머니 보컬

노인들로 구성된 어르신 밴드는 연습하는 모습도 실제 공연 때처럼 매우 진지했다. 연주하는 사람들과 노래하는 보컬이 혼연일체가 되어 연습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정호 강사는 연주하는 밴드원들을 살펴보다 틀리거나 서툰 연주가 나오면 섬세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곤 했다.

한참 동안 연습에 푹 빠졌던 밴드 멤버들이 잠시 쉬기 위해 객석으로 내려왔다. 연습이 재미있느냐고 물으니 이구동성으로 "아주 재미있다"고 했다. 연주하는 모습만 봐선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가장 젊은 분이 63세였고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74세였다.

노년에 이런 '괴력'을 발휘하려면, 젊었을 때 추억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어 '젊었을 때 악기를 다뤄본 적 있느냐'고 물었는데, 의외로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나이 들어 열정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름에서도 중후함을 뽐내는 '어르신 밴드'는 4년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 밴드를 지도하고 있는 한정호 강사가 노인들에게 악기 연주를 알려주면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올해 66세가 된 김도업 할아버지는 이 밴드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일렉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4년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은 역시 달랐다. 능숙한 그의 손이 일렉 기타 위를 춤출 때마다 보는 이의 몸도 들썩였다. 보컬을 맡고 있는 최영자(74) 할머니는 '최고령'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최 할머니는 악보 없이 가요 100곡 이상을 부를 수 있다고. 할머니라고 해서 옛날 가요만 부를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최 할머니는 최근 유행하는 가요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다고 한다. 참 대단한 기억력이고 실력이 아닐 수 없다.

63세 동갑내기 할머니 4명, 드디어 꿈을 이루다





젊은시절에 꿈꿨던 꿈을 이뤘다는 김봉숙, 김웅희, 유미희, 방효남씨


ⓒ 이승철



사실 '드럼'은 가장 체력 소모가 큰 악기이기도 한데, 이곳에선 할머니들이 '드럼'을 맡고 있었다. 올해 73세인 서효석 할머니는 나이가 무색하게 멋들어진 드럼 연주를 보여줬다. 그런데, 서 할머니가 드럼을 치는 동안 객석 아래서 연습 보조기로 연습하는 할머니가 눈에 띄는 것 아닌가. 왜 무대가 아닌 객석에서 막대기를 두들기냐고 물었다.

"지금 드럼 연습하고 있는 거예요. 드럼이 두 개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연습할 땐 이렇게 밑에서 따로 연습하는 거예요."

빙긋 웃으며 연습에 열중하는 할머니는 69세의 제성자씨로, 어르신 밴드에 들어온 지 2년 정도 됐다고 한다.

"옛날 시골에서 살 때는 부엌 부뚜막에서 부지깽이로 이렇게 두들기며 장단을 맞췄거든요. 심심할 때 혼자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두들기는 부뚜막 장단 아세요? 호호호."

연습에 열중하는 멤버들에게 '젊은 시절에도 밴드를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지금 소원성취한 분 있느냐'고 물었더니,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 네 분이 손을 번쩍 들며 "우리는 어렸을 때와 젊은 시절 그렇게 (밴드를) 해보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한이었는데 나이 들어 소원 성취했다"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소원을 푼 주인공은 김봉숙, 김웅희, 유미희, 방효남 할머니로 모두 63세 동갑내기다. 젊었을 때 '그룹사운드'를 정말 해보고 싶었으나, 먹고 살기 바빠 계속 미뤄두기만 했다고. 이들은 "늘그막에 악기를 배우고 밴드를 구성해 공연도 하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노인들'이 '노인들'에게 보내는 '희망공연'





최고령인 손영자 할머니와 서효석 할머니, 그리고 최고참인 김도업노인과 부뚜막 장단을 이야기한 제성자 할머니

ⓒ 이승철







연습 중에 지도 받는 모습


ⓒ 이승철



의정부 '어르신 밴드'는 그동안 50여 회나 공연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적은 의정부 시청 앞 광장에서 했던 '치매 예방의 날' 공연. 동병상련이랄까. 노인들이 노인들에게 바치는 공연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인데, 역시 공연을 한 이들의 머릿속에도 '콱' 박혔나보다.

'어르신 밴드'는 대부분 노인요양병원이나 보호시설 등에서 공연을 한다. 많은 밴드들이 공연 후 출연료를 받겠지만, 이들은 빵이나 과자, 음료수 등 위문품을 사들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작은 것을 베풀고 더 큰 보람과 행복을 얻어오는 것이 봉사"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 배운 악기 연주와 노래로 밴드를 구성하여 노인들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봉사와 공연을 하는 '어르신 밴드'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들은 아직 청춘이에요. 이렇게 연주하고 노래하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데요?"
당 당하고 유쾌한 노인들과 인터뷰를 마치고 그들의 연습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뒤 한정호 강사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한 강사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악기를 배우는 노인들은 모두 17명. 피아노와 키보드, 일렉(전기)기타와 베이스 기타, 드럼, 보컬로 구성된 그룹사운드라고 한다.





객석에서 모두 함께


ⓒ 이승철



"사실은 작년에 울산에서 실버 밴드 경연대회가 있어 참여했다가 예선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 강사의 말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앞서 말했듯 '어르신 밴드'를 하는 이들 중엔 젊은 시절 악기를 다뤄봤다거나, 노래를 해봤다거나 하는 이들이 전혀 없다. 완전히 '순수 아마추어' 노인들로 구성된 것. 하지만 대회에 출전하는 다른 밴드들은 거의 대부분 예전에 경험이 있는 이들로 구성되고 나이가 젊은 이들도 많이 섞여 있어 '어르신 밴드'와는 경쟁이 되지 않더라는 것.

"우리 어르신 밴드는 그런 면에서 다른 실버 밴드들과는 기본적으로 다릅니다. 경연대회의 규정도 엄격하게 적용해서 노인들만의, 순수 아마추어 노인들만의 경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일까, 대회에서 상은 못 타지만 다른 실버밴드 구성원들로부터 아주 특별한 격려와 박수 갈채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두 시간씩 연습을 하는데, 그 실력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고. '의정부 어르신 밴드'가 노년층의 장기하로 오랫동안 건재하며 많은 노인들에게 좋은 음악과 희망을 들려주길 바란다.


출처: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26&newsid=20090723122504803&p=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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