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친절한 이삭
창세기 26:24-30(09/20/09)
1. 가장 부러운 사람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가장 부럽습니까?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빌리
그래함처럼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처럼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본회퍼처럼
행동하는 신앙을 소유한 목회자도 아닙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영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물론 이런 분들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는 것 아닙니다만 모든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친화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부럽습니다. 한국의 지구촌 교회 목사인 이동원 목사가 그런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난 지 5분 안에 처음 만난 사람을 오랜 친구처럼 만드는 탁월한 친화력을 가진 분입니다.
이런 목회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2. 이삭의 친화력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이 대단한 친화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삭이 블레셋의 그랄 지방에 살 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질투를 하여 그를 동네에서 추방시킵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로 이사를 가서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거기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빼았자 그들을 피해 다른 동네로 가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역시 그 동네 사람들도
우물을 빼앗았습니다. 이삭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 후로도
얼마나 자주 블레셋 사람들과의 충돌을 피하여 이사를 했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그들은 브엘세바에 정착했습니다. 불쌍했던지 어느 날 하나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어 자손이
불어나게 하리라.” 그랄 사람들을 피해 우물파기를 계속했던 이삭은 이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어느 날 브엘세바에
살던 이삭을 그랄왕 아비멜렉이 찾아왔습니다. 이삭이 말했습니다. “나를
쫓아낼 때는 언제고 왜 나를 찾아왔습니까” 고 묻습니다. 아비멜렉이 대답합니다. “주께서 당신과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 우리와 평화 조약을 맺읍시다. 우리를 절대로 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이삭은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비멜렉이 자기를 찾아온 이유를 알다가고 모를 일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부러웠습니다. 그가 부자가 된 것도 그렇고 자기에게
이삭이 어떻게 그렇게 너그러울 수 있는지 이삭이 부러웠습니다. 이삭을 가까이 하고 싶었고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삭은 자기를 괴롭히고 쫓아냈던 아비멜렉 일행에게 잔치 베풉니다.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친구가 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다음날 아침
아비멜렉도 이삭의 좋은 이웃과 친구가 되겠다고 맹세를 하고 돌아갑니다.
3. 코러스의 의미
여러분과 저의 친화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다른 사람이 또는 미워하던 사람조차 찾아와서 만나고 싶은 정도입니까?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찾아가고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과 얼마나 자주 접촉하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여러분을 부러워하며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나요? 누가 여러분과 저를 찾아 와 만나고 싶어하나요? 저는 지난 주말에 참가했던 코러스 행사를 통하여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코러스에 참가한 것이 잘한 일일까요? 저는 지역 주민과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코러스가 열리는 동안 제가 아는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지역 사람들과 무언의 담을 쌓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분이 저에게 듣기 좋으라고 그런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옳은 말입니다. 비록 음식을 사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고
싶은 이유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와 반대입니다.
4. 호감을 가지고 있는 종교
한국의 기독교윤리 실천운동이라는 비영리단체가 지난해 10월에
약 1000명을 대상으로 종교에 대한 호감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 31.5%, 카톨릭 29.8%, 개신교 20.6% 입니다. 왜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기독교가 사회에 불안을
조장하고 도덕적인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것입니다.(70%) 또한 예수 사랑을 위하여 가족 사랑을 포기하게 만들어 가정을 파괴 (13%)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런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가르칩니까?
고린도후서 5:18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나는 사람을 5분 안에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만드는 이동원 목사나 아비멜렉에게 추방 당했지만 그가 이삭을 다시 찾아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이삭처럼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친화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성경이 말해 줍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3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주님처럼 여긴다면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5.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민족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민족이 누구일 것 같습니까? 피지인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본인이 가장
친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파키스탄
사람이 가장 친절하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도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국 여행객이 이란을 여행 도중에 이란 사람 집에 갔다가 감동이
되어 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분은 이란 사람이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믿는 이유를 3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이란 사람들이 자기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더라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처음 보는 사람들을 문 앞에까지 나와서 정중하게 맞이하는 태도가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란에서 최고로 귀한 음식을 대접받았답니다. 그 분들이 이란을 여행하면서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방문하는 동안 그들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물 방울이 약간 튕겼는데 즉시 휴지를 가져다 주었답니다. 다른 한국
사람도 이란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나서 마치 여우에 홀린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답니다. 얼마나
따뜻한 환영을 받았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6. 대대적인 환대
요즈음 연합감리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Radical Hospitality 이라는 단어입니다. 환대를 하되 기대할 수 없을 만큼 극진히 환영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할 수 있는 환대가 어떤 것일까요? 저는 오늘 아침
애난데일에서 코러스 준비를 하는 교우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돌아오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도와야겠다는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또한 동시에 그
분들이 사람답게 사는 길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영어를 가르치지만 영어 성경도 가르쳐서 진심으로 그 분들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처럼 여겨졌습니다. 돕되 무조건
돕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지불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제가 그 분들에게 투자한 만큼 자신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좋은
수단이 되고 통로가 될 것입니다.
7. 영적인 우물
이삭이 우물을 팠는데
아비멜렉이 와서 빼앗아 갔다는 말은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관계적인 그리고 영적인
갈증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 온 것은 관계적인 목마름과 이삭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그리움이 많았음을 알려줍니다. 그 사람들뿐이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갈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 교회가 참여하는
영어강좌와 우리 교회가 하려는 사랑방이 영적인 우물이 될 수는 없을까요? 이삭의 무언의 행동이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들을 감동시킨 것처럼 저와 우리 교우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그들도 주님 앞으로 나와서 참된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살도록 돕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용환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