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3:14-16(11/29/09)
1. 고아원의 아이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9살난 남자 아이가 있습니다. 식당을 하던 엄마가 불경기로 문을 닫게 되자 보육원에 맡겨진 성민이라는 아이입니다.
어머니 황모씨는 혼자 아들을 키우다가 더 이상 성민이를 돌볼수 없자 하나뿐인 혈육을 보육원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엄마가 성민에게 말합니다. “성민아, 일년 후에 엄마가 꼭 찾으러 올께.” 흐느끼는 엄마에게 성민이는 “엄마, 난 괜찮아,” 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위로합니다. 성민이는 보육원 인근의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얼굴의 그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성민이는 가끔씩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육원 정문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추석 때 황씨는 성민이를 보러왔습니다. 그러나 금방 돌아가야했습니다. 엄마를 따라가겠다는 아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달랬습니다. 성민이는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엄마가 그 때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2. 예례미야에게 들려온 약속
성민이처럼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어머니가 아닌 하나님을 기다리는 예례미야입니다. 예례미야가 궁중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해주신 소식은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느브갓네살왕은 4차레나 유다를 침공하고 시드기야왕 11년에 멸망시킵니다. 제 4차 침공 때는 바벨론 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1년 반 동안 포위망을 풀지 않고 항복하기를 기다렸습니다. 갇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시드기야왕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성벽을 깨고 도망합니다. 바벨론 군이 추격하여 여리고 평지에서 사로 잡아 두 눈을 빼고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 갔습니다. 예례미야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례미야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33장 6절의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이 성과 백성이 받은 상처를 치료하여 고치고 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할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곳이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황폐하여 사람도 짐승도 살지 않는 유다 성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 신부의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며 내 성전에서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이 `전능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의 사랑은 영원하다.' 하고 노래하는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다.’
전쟁후 페허한 도시에 다시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는 것처럼 예루살렘 도시가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때의 징조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 의로운 왕이 태어나는데 그분이 세상에서 공정하고 옳은 일을 행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유대인들은 메시야 탄생의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메시야의 탄생은 우리에게 대단치 않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이는 마치 성민이 엄마가 보육원으로 성민이를 찾아오는 것과 같습니다.
3. 모세를 통한 약속
메시야에 대한 기다림은 하나님의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와 함께 하여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레위기 26:12). 해가 지구와 늘 함께 있듯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있고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백성들을 구할 분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정말 약속을 지키시는 분인가 의심할 때에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거짓말을 하지 아니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변덕을 부리지도 아니하신다. 어찌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아니하시랴? 어찌 약속하신 것을 이루지 아니하시랴?”(민수기 23장 19절) 성경은 하나님은 약속을 당장 지키지는 않아도 반드신 지킨다고 말합니다.
4. 약속을 지키는 남편
사람들은 얼마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나요?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하여 의료보험 개혁을 시도합니다. 한국은 세종시 건설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모양입니다.
85회 생신과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할아버지를 신문 기자가 찾아가서 물었습니다.“할아버지, 이렇게 장수하시고 오래 동안 아내와 해로하게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말하기 곤란한데.”“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할아버지처럼 장수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비법이 있으시면 가르쳐 주시지요.” 이렇게 기자가 간청을 하자 할아버지가 대답하십니다. “비결은 간단하지. 우리가 결혼 할 때 서로 약속을 했지. 만일 다투게 되면 내가 밖으로 나가 동네를 세 바퀴 돌고 오기로 했었지.”“지난 60년 동안 매일 밖에 나가 손주 또는 개와 걷다보면 화도 풀리고 건강에도 얼마나 좋은지 몰라.”비록 부부가 매일 싸울만큼 사이가 안 좋았을지 모르나 할아버지가 약속을 지킬려는 노력 덕분에 부부가 해로할 수 있었고 건강에도 유익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도 어쩌면 이 할아버지와 같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했으니 어길 수는 없고 화가나도 끝없이 용서하고 백성으로 받아드려야 되었으니 말입니다.
5. 예수님의 약속
성경은 약속과 성취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약속이 예수의 탄생을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시겠다고. 그리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믿고 역경속에서도 참 평안을 누린 사람이 있습니다.
6. 내 평생에 가는 길
Horatio Gates Spafford 라는 사람은 필라델피아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1873년에 프랑스에서 온 교수입니다. 그는 모처럼의 여행에 온 가족과 함께 왔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Spafford 교수 부인과 네 딸 매기(Maggie), 타니타(Tanetta), 애니(Annie) 그리고 베씨(Bessie)가 뉴욕항을 출발하는 프랑스 여객선에 올랐습니다. Spafford 교수는 사정이 있어서 함께 떠나지 못했습니다. 승객들을 태운 배는 1주 동안 순항하다가 11월 22일 새벽 2시 영국의 철갑선 록키안(Lochearn) 호와 정면으로 충돌하였습니다. 그 여객선은 30분도 못되어 226명의 목숨을 실은 채 가라 앉았습니다.
스패훠드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4딸은 온데 간데 없고 자신만 구조됨을 깨달았습니다. 스패훠드 부인은 시카고에 있는 남편에게 혼자만 구조되었다고 전보를 보냈다. 스패훠드 교수는 아내가 머무는 영국을 향에 배에 올랐습니다. 배의 선장은 스패훠드를 선실로 초대했다. 거기서 선장은 “지금 우리는 당신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한 그 위를 통과하는 중입니다.” 라고 말했다. 스패훠드는 선실로 돌아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기에게 어찌하여 그토록 큰 시련을 주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다면 어찌 그리도 가혹한 일을 하실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가 울부짖는 순간 네 아이의 환상은 활동사진을 보는듯 차례로 지나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심한 폭풍이 잔잔해지는 순간 세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평화가 그를 감싸 안았다. 이 때 그가 지은 시가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그는 그 불행을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7. 강림절
오늘부터 시작되는 강림절은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음을 감사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진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베들레헴 땅에서 2000여년 전에 태어난 예수가 누구길래 2천년이 지났는데도 그 분의 탄생을 기뻐할까요?
그 분의 탄생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메시야 탄생에 대하여 이사야서 9장 6절과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다. 그가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니 그 이름은 `위대한 스승',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하리라.
오늘의 말씀은 단순히 예수 탄생에 관한 말씀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끝없이 관심을 가지신 분임을 가르쳐 줍니다.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서 구출해 주시는 분임을 상기시킵니다.
8. 절망하는 분들
오늘날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최근에도 여러명이 자기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국이 경제협력기구 (OECD) 회원국중 자살률이 1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루에 평균 38명이 자기 목숨을 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살 예방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종교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과 제가 믿는 예수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12월 20일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을 모셔 오자고 목회자 생각에 썼습니다. 우리 교회의 행사라고 생각하시지 말고 한 생명을 구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애를 썼는데도 그날 오지 않는다고 실망하실 필요 없습니다. 언제가 주님을 믿게 될 때 그 분들은 여러분들께 고마워할 것입니다.
9. 희망의 이유
베드로는 이렇게 권합니다. “마음에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간직한 희망에 대해서 그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답할 준비를 하십시오.” (현대인의 성경 벧전 3:15)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이 우리를 보고 그 계획을 포기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오늘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아느냐고.
우리는 단순히 미국에 사는 한국 교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루 하루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을 하나님으로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읍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 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읍니다.”하나님은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기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