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기쁨
스바냐 3:14-17(12/13/09)
1. 가장 기뻤던 순간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결혼했을 때, 첫 아이 낳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사업해서 처음으로 돈을 벌었을 때, 첫 차를 샀을 때, 처음으로 집을 샀을 때, 미국에 왔을 때, 영주권을 받았을 때, 아들이 전 과목 A 를 받았을 때, 자녀가 명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 등 여러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소유하거나 이루어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 인해 기쁜 적이 있습니까? 순간적인 기쁨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나 때문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분이 있습니까?
2. 스바냐 선지자
오늘 성경에 바로 소유의 기쁨이 아니라 존재 그리고 관계의 기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누구입니까? 스바냐는 유다 요시야왕 시대 때 선지자입니다. 요시야는 8살 때 왕이 되었는데 그 전의 왕은 아몬이고 그 이전은 므낫세이며 므낫세 이전의 왕은 히스기야입니다. 히스기야가 종교개혁으로 백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불을 붙였다고 한다면 므낫세는 가장 사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즉위 2년 만에 죽임을 당하자 요시야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 때 유다 왕국의 개혁을 외친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 스바냐입니다.
3. 스바냐 의 메세지
스바냐가 처음부터 기쁨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3장 1절 이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망하고야 말 도성아, 반역하는 도성, 더러운 도성, 억압이나 일삼는 도성아,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님의 충고도 듣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않는구나. 이렇게 못된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내가 뭇 나라를 칼로 베었다. 성 모퉁이의 망대들을 부수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자를 없애어, 거리를 텅 비게 하였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서 사람도 없게 하고, 거기에 살 자도 없게 하였다.”하나님이 스바냐로 이스라엘이 폐망한 모습을 미리 보게 하십니다.
왜 즐거워합니까? “주님께서 징벌을 그치셨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셨다. 이스라엘의 왕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벌을 그치고 원수를 멀리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니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사람들은 이런 저런 두려움 속에 삽니다. 학생들은 성적하락을 두려워합니다. 주부들은 물가가 오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연인들은 결별 선언을 두려워합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감원태풍을 두려워합니다. 정치인 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병역 비리입니다. 연예인은 인기 하락을 두려워합니다. 운동선수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예선탈락 입니다. 투자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가폭락 입니다. 정치인들은 낙천 혹은 낙선자 명단에 올라갈까 두려워합니다.
그것뿐입니까? 직장 상사가 두렵고, 자식이 두렵고, 아내나 남편이 두렵고, 부모가 두렵습니다. 미래가 두렵고, 사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두렵습니까?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이 두렵지는 않습니까?
5. 참을 수 없는 기쁨
스바냐는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그 분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 “참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참을 수 기쁨을 누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유다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오신 기쁨이 얼마나 큰지 개역 성경은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된 백성인데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데도 이들 가운데 있으면서 참을 수 없는 기쁨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6. 장애인 엄마의 기쁨
지난 주간에 한인 장애인 고등학생을 만났습니다. 정신 박약의 뇌성 마비인 21살 난 청년입니다. 휠체어에 않아 있고 두 손은 굽혀져 있었습니다. 말을 잘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입은 늘 벌리고 있어 침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 아들을 보러 학교에 온 엄마의 얼굴이 환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조금 전에 집에서 학교에 보냈는데 몇 시간 후에 다시 보는데 그렇게 반갑습니다.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사실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저 자식만 보고 있으면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82년에 유학 올 때도 그랬습니다. 딸 아름이가 두 달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미국에 와서 일하기 위해서 아름이를 한국에 맞겨 놓고 오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충고했습니다. 부모는 자식 얼굴을 보아야 힘이 나느니라. 아무리 공부하고 돈 벌기가 힘이 들어도 자식 얼굴을 보면 힘든 것을 다 잊고 새로운 힘이 솟아 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달 된 딸을 데리고 미국에 왔습니다. 말할 필요로 없이 아름이를 데리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됐습니다.
7.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갖는 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이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먼데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는 먼데서 오는 아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요? 둘째가 집을 떠날 때부터 입니다. 떠나가는 둘째의 모습이 점으로 바뀌고 그 점마저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버지는 지평선 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매일 둘째가 돌아오기 만을 간절한 심정으로 기다리며 동구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수년이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그날도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먼데서 점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아버지는 침침한 눈을 비비며 보고 또 봅니다. 둘째 아들이 틀림없습니다.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둘째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들의 모습이 가까워올수록 초췌한 모습이 말이 아니지만 아버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둘째가 오고 있습니다. 둘째가 오고 있다구요.” 아버지는 상거지가 되어서 돌아온 아들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아들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전혀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저 아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 때의 기쁨이 바로 참을 수 없는 기쁨입니다.
8. 만 백성아 맞으라
오늘 부를 찬송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입니다. 만 백성아 맞으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2장 10-1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아기 예수의 탄생의 소식을 전하면서 천사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땅에 오셔서 너무 기쁜데 사람들은 알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9. 결론
ABC 방송국에서 십내 소년 소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임신하여 키울 수 없자 포기하고 입양 기관에 딸을 넘겼습니다. 두 사람은 후에 결혼하여 3명의 아들과 딸을 더 낳았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미혼시절에 낳은 딸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국에서 사람을 찾아준다고 하자 자기들의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후에 만남의 나무가 있는 언덕에 올라가서 만났습니다. 아빠와 엄마는 흐느껴 웁니다. 만남의 기쁨을 이기지 못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딸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찾아 와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의 눈빛을 주십니다. 사랑의 미소를 주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손길을 주십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24시간 365일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사람들은 존재 가치가 있을 때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저 우리가 살아 있음만으로도 행복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딸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이 기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곁에 오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 곁에 있기에 행복합니다. 그래서 그 기쁨과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그 기쁨을 주는 사람이 기뻐하고 받는 사람이 기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